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해
(스포주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많이 꼽는 영화들 중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종종 언급되곤 합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03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로, 감독 이와이 슌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참 잔잔한 영화입니다.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일이지만,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잘생긴 대학생 청년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엄청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긴 하죠. 그렇다고 아예 없을 일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담담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영화라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졸리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참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일단 츠마부키 사토시의 리즈시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몰입 시작입니다.
아, 참고로 19금 영화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이었다
조제는 과도한 감정 표현이나 화려한 영상기법 없이 담담하고 절제된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 뮤지션인 쿠루리(Qururi)의 Highway라는 노래도 들으면 참 담담하고 어딘가 서글픈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이 영화랑 완전 찰떡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참 자연스러워서 영화의 사실감을 더해주는데, 저는 솔직히 이 영화가 그냥 뻔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을 보며,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들도 그걸 이겨내는 그런 뻔한 드라마를 담은 영화이지 않을까 했지만, 제 생각과는 완전 다르게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끝난 영화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많이 울었던 영화였습니다. '나라도 저런 선택을 했을 것 같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여주인공인 조제의 담담함이 더 슬프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어쩔 수 없지만 괜찮아'
저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네요.
조제 / 호랑이 / 물고기가 의미하는 것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조제', '호랑이', '물고기'는 괜히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다.
주인공인 조제도 사실은 극중의 여주인공이 쓰는 가명이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조제가 책에서 찾게 된 이름입니다.
호랑이는 그런 조제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가장 두렵고 무서워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물고기'는 조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영화에서 조제는 남주인공과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보러 동물원에 가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을 보러 갔지만 문을 닫는 날이라 보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징을 가지는 단어들이 극에 등장하며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비추는 연출은 묘하게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이 영화를 10번은 봤던 것 같은데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닷속의 조개에 자신을 비유하는 조제가 떠오르네요.
<조제, 호랑이와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슷한 영화?
조제와 비슷하게 절제된 미학적 특징을 가지면서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을 좀 더 찾아봤는데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인 '인 더 무드 포 러브'와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스피릿 어웨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모호한 서사와 상징적인 이미지로 극을 이끌어가면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합니다.
액션영화나 공포영화처럼 자극적인 요소들은 없지만, 잔잔함이 묵직하고 진하게 다가오며 오랜 여운을 남기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네요.
저는 이 영화가 오랫동안 제 '인생영화'였습니다.
과거에 영화를 전공했던 시절에는 영화 작품을 보면서 항상 복선을 탐색하고 스토리의 내용을 유추하면서 나름대로의 결말을 상상하며 영화를 보던 버릇이 있었는데 어린시절의 제 생각을 완전히 깨부순 영화가 조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여운이 아직까지도 오래 가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봐야지 생각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국판은 망했다?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리메이크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보지 않았습니다. 워낙 원작이 출중했던터라 그 감동을 깨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국판은 그렇게 평이 좋지 않더군요.
사실 내용이 좀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아마도 끝까지 한국판은 안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하게 애니메이션 버전도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것도 안보게 될 것 같습니다. ㅋㅋ